top of page

As the sea waves.2023

바다가 파도칠 때, 모든 것이 전복되고 찰나 위에 찰나가 덮여 허망하게 흩어지는 것 같으나, 그가 가지고 온 모래는 일부가 남아 찰나의 흔적으로 쌓인다. 

#00. [준비하는 마음]

산 능선의 엣지, 가장자리는 뾰족뾰족 불규칙하다. 

 

추수할 때를 기다리는 벼의 색은 노랗고 진하다. 군데군데 약하게 탄 듯 눌러 붙은 색이 있다. 

 

비가 온다. 대기 중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습기 덕분에 저 멀리 보이는 산의 투명도가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가까이 있는 것은 진하게, 멀리 있는 것은 연하게. 어떠한 규칙 속에서 고유한 선명도를 보인다. 

 

들판, 혹은 벼들 너머의 푸른 지붕 집에서는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오랜만에 보일러를 지피고 있는지 안개의 존재를 뚫고 솟구치는 연기를 내뿜고 있다. 

 

땅에서 조금 떠 있는 집 덕분에 시선은 한결 높아졌다. 발 밑에 있는 것들을 좀 더 내려다본다.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이며 사랑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다를 다시 보면 사랑의 이유가 닿아 올까?

 

#01. [바다의 색]

바다의 색은 다양하다. 밀려오는 물결에는 조개 껍데기 같은 보글보글 하얀 거품이, 달아나는 물결에는 젖어서 본래의 색보다 진해진 짙은 고동색의 혹은 진녹색의 해초가 색을 더한다. 파도의 반복 속에 검정, 엷은 황갈색, 옅은 바위색의 작은 알갱이들은 쉬지 않고 뒤섞인다. 

 

오늘의 바다는 하늘의 색보다 정말 조금 짙은 회색빛이 섞여 있다. 서로 다른 색 위에 같은 필터로, 그것도 대비감이 약한 뿌연 안개 필터를 씌운 듯하다. 물결도 명확히 보이지 않고 풀밭 속에 잠복한 뱀처럼 스르륵 기어 왔다 홀연히 사라지길 반복한다. 

 

수면 위의 물결을 알아볼 실마리는 음영 뿐이다. 움직이는 부분은 더 진하거나, 더 연하다. 가끔은 아예 색이 빠져 흰색의 거품을 보이기도 한다. 

 

바다를 보기 위해 생전 처음 들어본 작은 읍내를 지나는 배차 간격이 하루에 몇 번 되지 않는 작고 좁고 덜컹거리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탔고, 설상가상으로 엷지 않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었다. 참으로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시야에 희뿌연 물결이 보이자 어찌할 수 없는 미소가 해볼 도리도 없이 귀에 걸리는 것이!

 

바다의 파도 앞에서 왜 그렇게 환하게 웃는가? 밀려오는 흰색과 푸른색의 찰나들이 무엇이기에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가? 그걸 보기 위해 멀고 험한 길을 달려가길 마다하지 않는가? 그 앞에서 숨을 깊게 들이쉬는가? 

 

나는 왜 바다를 사랑하는가.

 

#2. [반복]

파도 역시 반복이다. 물결의 속도, 모양, 물의 양 그 무엇도 이전의 찰나와 같지 않지만 때에 맞게 밀려왔다 부서졌다를 반복한다. 

 

부산히 움직이는 하얀 부서짐 뒤에 잠잠한 잔물결만을 허락하며, 깊고 묵직한 무게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색. 

 

반복은 같지 않은 것을 같은 것의 범주로 여기는 것이다. 같지 않은 것을 같은 것으로 여기며 자꾸 되풀이한다. 같아 보여도 같지 않다. 모든 같은 것들은 사실 미세하게 변주한다. 지금을 지나면 되돌아올 수 없다. 같을 수 없다. 

 

같지 않은 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되풀이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다. 반복되는 움직임에 반영된 지금이 있다. 찰나의 파도가 어떤 모양으로 부서지는지를 보며 현재의 바다를, 나를 알아간다. 

 

전진과 후진을 계속하는 푸른색과 하얀색 앞에서 파도를 단위로 나를 들여다보자. 힘있게 밀려 들어오는지, 가져온 것들을 모두 남기고 흩어지는지, 잠시 그 전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흐르듯 들어오는지, 혹은 그 흔적을 최대한 지우며 물러나는지. 다가옴과 뒷걸음이 인식되는 모양은 언제나 나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물결을 거울 삼아 나를 깊이 관하자.

 

 

Waves are also repetition. The speed, shape, and the amount of water in each wave are never the same, but they repeat, surging and breaking in their own time.

 

The ocean remains silent and calm behind the white, crashing waves, holding the position with its deep and heavy presence, an endless expanse of blue.

 

Repetition is considering the different as a category of the same. It deems the dissimilar as the identical and continues to repeat. Even if things appear the same, they are not. All things, in fact, vary subtly. Once the moment passes, it won’t be returned to. It can never be the same.

When we continuously repeat similar yet different things, we can examine ourselves. The present is reflected in the repetitive movements. Watching how ephemeral waves break, we come to know the current sea, and ourselves.

© 2021, Soyeon Kim, All rights reserved.

  • Instagram
bottom of page